2014년 8월 29일 금요일

항아리


그릇의 아래위가 좁고 배가 불룩 나온 모습이다. 한민족(漢民族) 사이에 발생한 한문자인 호(壺)도 바로 항아리의 형상을 본떠서 만들어졌다. 입 ·목부분의 특징에 따라 입큰항아리[廣口壺] ·목긴항아리[長頸壺] ·목짧은항아리[短頸壺]로 나뉜다. 옛날부터 넓은 지역에 걸쳐 써왔으나, 토기 발명 이후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아래보다 위가 약간 벌어진 주발 모양의 옹기뿐이었으며, 항아리가 만들어진 것은 그보다 나중이었다.

인류가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한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대략 질그릇 항아리가 만들어졌으며, 역사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승되고 있다. 형태는 그 지역, 그 민족에 따라 갖가지 특징을 나타낸다. 흙으로 만든 것 외에 나무로 만든 것, 금 ·은 ·동 등의 금속으로 만든 것, 유리로 만든 것 등 그 재료와 종류가 많다.

항아리의 제작과 사용은 세계적으로 보아 인류문화의 발아기(發芽期)보다 조금 늦게 발달한 농경시대에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찍이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오리엔트 ·인도 ·중국 등 고대문명이 발상한 모든 지역에서 정교한 항아리가 발견된다. 중국에서는 선사시대 양사오문화[仰韶文化]의 채색도기(彩色陶器)가 간쑤성[甘肅省] 일대를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며, 불룩한 몸 표면에 기하학 무늬를 나타낸 항아리였다. 산시성[陝西省] ·산시성[山西省] ·허난성[河南省]에서도 작은 입에 뾰족한 바닥을 지닌 항아리가 발달하였지만, 새끼줄무늬[繩文] 또는 연사(撚絲)무늬 등의 붉은간토기[紅陶]였다. 입이 작은 것으로 보아 물이나 술 등의 액체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토기와는 달리 은(殷) ·주(周) 시대에는 동기(銅器)의 항아리도 있었다. 이것은 신 앞에 술을 담아 바친 제기(祭器)였다. 몸에는 괴수 무늬를 돋보이도록 양각주물기법(陽刻鑄物技法)으로 장중하고 엄숙한 느낌을 나타내게 하였으며, 대개의 경우 둥근 고리를 지닌 귀를 어깨에 붙였다. 아마 귀에 달린 고리는 운반할 때 쓰는 손잡이로 생각할 수 있으나, 귀는 점차 복잡한 장식을 첨가하는 등 몇 차례의 변천을 거쳐 갖가지 짐승의 귀 모습을 본뜬 것으로 표현되었고, 뚜껑이 있는 항아리도 있었다. 또한 편평한 몸에 가느다란 목과 굽이 있고 양어깨에 고리귀를 가진 편호(扁壺)도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나타나 한(漢)시대까지 계승되었다.

당(唐)시대로 내려감에 따라 동기는 서서히 쇠퇴하여 도제(陶製)의 항아리로 바뀌게 된다. 이것들은 토기의 항아리와는 그 형식을 달리하는 것이지만 제기로서 만들어진 오랜 전통은 변함없이 계승되고 있다. 당대 이후부터 중국에 있어서 항아리는 기교적으로 발달을 거듭하게 되어 그 소성법(燒成法)과 형태 ·장식 무늬면에서 탁월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한국에서는 선사시대의 민무늬토기[無文土器]에서 항아리의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이 토기는 노란빛이 감도는 갈색에서 연한 갈색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빛깔을 보이며, 그 형태는 원통형 목과 몹시 좁고 뾰족한 납작바닥[平底]을 가진 불안정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 외에도 긴 계란형 몸에 목을 가진 항아리 등이 있는데, 일본에 건너가 야요이[彌生] 문화기에 등장한 항아리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한편 같은 선사시대에 출현한 붉은간토기의 항아리는 넓은 몸에 굽이 좁아지는 아랫몸을 가진 목긴 납작바닥의 형태에, 그 표면은 홍색 산화철을 바르고 조개껍데기 ·차돌 등으로 반들거리게 문지르고 어깨에 검은색으로 연하게 U자 무늬를 세 겹으로 겹쳐 꽃잎처럼 돌렸다. 이러한 무늬는 중국의 채도에서는 볼 수 없으나 그릇 형태가 그것과 똑같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중국에서 시작해서 전파해 온 것임에 틀림없다.

선사시대 말기에 출현한 김해토기(金海土器)의 항아리는 바닥이 둥글거나 편평한 것들이었으며, 그 색은 홍색에 가까운 밝은 적갈색 계통과 신라토기와 같은 청색이 감도는 회색을 띠고 있다. 손으로 빚어서 만든 종래의 기법과는 달리 처음으로 녹로를 사용하였고, 오늘날에도 활용되고 있는 터널식 굴가마[登窯]를 채용하는 등 상당한 기술적인 개발이 이루어졌다. 높은 온도로 구워졌으며, 굽기 전에 균형과 변형을 방지하기 위해 안에 받침을 대고 밖으로부터 방망이에 평행선을 음각하거나 또는 가는 끈을 감아서 항아리의 표면을 때렸기 때문에 격자무늬 ·새끼줄무늬가 나타나 있다.

삼국시대의 토기항아리에 이르면 배가 점점 불룩한 원형으로 된 것, 거기에 굽이 달린 것 등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그 어깨 부분과 뚜껑 부분에 여러 기하학 무늬와 사람 ·짐승 무늬로 장식하거나, 사람과 짐승 모양을 만들어 첨부한 장식항아리 등이 만들어졌다. 고려시대에는 운문사동호(雲門寺銅壺)의 예와 같이 뚜껑을 갖추었고 고리손잡이가 달린 항아리가 있다. 어깨가 넓지 않고 밑이 과히 좁지 않아 원통에 가까운 형태이며 밑에 굽이 달려 있다. 그 밖에 청자항아리 등이 있고, 조선시대에도 갖가지 항아리들이 만들어졌다.

이와는 달리 크레타의 미노스 문명의 항아리와 미케네 문명의 항아리는 그 전표면을 기하학 무늬와 동물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한편 그리스의 항아리도 그 빨간색 바탕 위에 검은색으로 설화적인 내용을 그린 흑화식(黑畵式)과 검은색 바탕 위에 빨간색으로 신화(神話) 등을 묘사한 적화식(赤畵式) 등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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