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4일 화요일

성공하는 귀농 실패하는 귀농

돈을 많이 싸들고 간다고 좋은 기술을 가지고 간다고 귀농이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귀농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첫째이며 두 번째로는 지역 농민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눈 높이와 마음 씀씀이를 가져야 합니다.

성공하는 귀농과 실패하는 귀농의 예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귀농 실패담

2억원으로 땅 사고 집 짓고… 영농자금 대출 받았지만 실패


A씨는 3억원의 여유자금을 가지고 농사에 전념할 생각으로 귀농한 경우입니다.
월 50만원 이상의 소득이 생기려면 땅이 적어도 2천평은 있어야 하므로 평당 5만원으로 구입하였습니다.
이 보다 싼 땅도 많지만 일단 외지인이 땅을 사려다 보니 보통 땅값의 배를 주고 사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시골땅값은 공시지가가 있긴 하지만 기존에 2만원 하던 땅이 운 좋게 도시사람에게 바가지 씌워 4만원에 팔리면 그 동네 땅값은 최하가 4만원이 되는 것이 대다수입니다.

어찌됐던 A씨는 땅 구입비로 1억을 지출했습니다.
땅을 구했으니 집을 마련해야하므로 이왕이면 고요하고 한적한 동네와 멀리 떨어진 외딴곳으로, 건강을 생각해서 황토집을 지으려고 200평을 샀습니다.
200평은 쉽게 용도변경할 수 있었고 집을 짓는데 평당 300만원은 잡아야 했습니다. 황토집만 그런게 아니라 통나무집도 마찬가지로 이 정도 액수는 예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A씨는 얼추 2억을 땅과 집 마련에 쓰게 되었습니다.

귀농의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여긴 A씨였습니다.
하지만 A씨의 역경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시골에 땅도 사고 집도 지었다고 아는 사람들에게 자랑해놨으니 주말마다 손님치레에 시간을 뺏기게 되었습니다.
매일 밭에 나가 일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주말이면 서울서 내려온 친구와 밤늦도록 주거니 받거니 오가는 술잔에 다음날 늦게까지 쉬어야 했습니다.
이래저래 몇 달은 이런 생활 속에 시간을 보내게 되고 밭에 매일 출근해야 할 농부가 엉뚱한데 시간을 뺏기다보니 폐농해도 억울함을 호소할 곳도 없습니다.

아직 도시생활에서의 소비습관을 벗지 못한 A씨는 그럭저럭 1년간 2천만원은 까먹게 되었습니다.
남은 자금은 8천만원, 정신이 번쩍 들게 된 A씨는 인근의 농업기술센터나 지방농협 등의 영농기술반에 등록하여 몇 달간은 성실하게 작물재배에 관한 영농기술을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론으로 자신이 붙자 시설원예가 그럴 듯 해 보여 6천여만원으로 200평 비닐하우스 2동을 지어 백합농사를 지어봤지만 겨울철 하우스 관리에 미숙하여 그만 얼려 죽게 만들고 맙니다.

A씨는 의기소침해 질 법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장미에 도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번에 자금이 부족해서 농협에서 연리 4% 이자로 영농자금을 대출받게 되었습니다.
생활비도 바닥날 판이라 생활비까지 생각해서 대출 받게 되었고 백합과는 다른 장미의 재배요령을 몰랐던 A씨는 또 다시 실패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농사지어 본전은커녕 대출금 갚기도 빠듯해져서 농협에 담보 잡힌 집을 팔아보니 8천만원도 건지기도 어려워 보였습니다.

특별히 나쁜 짓 한 것 없고 그렇다고 노름을 한 것도 아닌 A씨는 어이없게 귀농에 실패하고 그나마 월급이라도 받을 수 있는 일터를 찾아 이젠 이농을 할 처지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비단 A씨의 귀농 실패담으로 지나치기엔 남의 일이 아닌 듯 합니다.

귀농 성공담

2천만원 전세 살며 품앗이로 농사일 익힌 후 노는 땅 임대


B씨는 2천만원을 기본자금으로 하여 귀농을 결심했습니다.
우선 전세로 살 집을 마련했습니다.
수리해야 될 집보다 수리하지 않아도 되는 집을 골랐습니다.
B씨는 귀농한 한 달은 일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다 간이 안 좋아져 요양차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만 하고 다녔습니다.

젊은 놈이 어쩌다가 그렇게 됐냐며 저녁마다 술 한병 씩 들고 동네 어른쯤 되는 분들이 번갈아 가며 B씨 집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때 B씨는 귀농 선배들의 조언을 떠올려 간이 안 좋아서 술을 절대 마시면 안 된다고 사양했습니다.
주는 술이라고 넙죽 받아먹게 되면 다음날 종일 퍼져버리게 마련이니까요.

도시에서 살다온 놈이 조금이라도 아는 척, 잘난 척하지 않고 주변에서 들은 대로 단순·무식하게 주민들의 말 하나하나에 경청하는 척 해주었습니다.
B씨는 반년동안은 동네 품앗이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품앗이를 통해 농사짓는 법을 하나하나 터득했습니다.
일 못한다고 남보다 품은 적게 받았지만 재배기술을 배운다 셈치고 아무 생각없이 단순하게 1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알아도 물어보고 물어본 것도 또 물어본 B씨를 안쓰럽게 여기던 주민들에게 B씨는 뭐든지 하나하나 가르켜 줘야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된 것입니다.
1년쯤 지나니 주위에서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어볼 것을 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저기 묵은 밭이 있는데, 한번 해볼텨?"

속으론 뛸 듯이 좋았지만 B씨는 넙죽 인사하기에 앞서 "땅 빌릴 돈이 없는데 어떻게 농사지어요? 그냥 몸이나 건강하면 되죠 뭐" 하고 한발짝 물러나 봤습니다.
그러자 동네분이 "평생 남 품앗이나 할 꺼야? 나도 놀리는 땅이니까 한번 해봐" 하면서 땅을 주어 돈 안들이고 임대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시골엔 이런 일이 많습니다.
B씨는 딱 200평만 임대해서 유기농을 시작했습니다.
B씨처럼 더도 말고 200평으로 시작하는 것이 초보 농사꾼들에게는 만만하며, 일단 시작했다면 매일 출근 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고추를 심어볼 요량인 B씨에게 이웃 밭 주민은 이랑은 어느 방향으로 내고 두둑은 어느 높이로 만들어야 하는 등 제각각 다른 말을 할지도 모릅니다.
이때가 바로 귀가 농(濃)해져야 합니다. 주위에서 이리저리 말이 많아도 "그냥 이렇게 한번 해볼께요"라고 일축해 버리면 됩니다.
B씨는 몸이 안 좋아 건강상의 이유로 농약을 치지 않아야 한다고 주위에 둘러대고 유기농을 실천했습니다.
혹 풀로 쑥대밭이 된 밭을 보다못한 이웃 밭 주인이 몰래 제초제를 쳐주는 수고도 할 수도 있는데 그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넘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긁어 부스럼 만들 일은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선 우등생이 최고의 대우를 받듯 농촌에선 농사만 잘 지으면 어지간해서 용서가 됩니다.
이렇게 하여 귀농 3년차가 되었을 때는 5천평을 경작하는 농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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