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6일 수요일

아름다운 집 - 한옥의 특성

우리 선조가 살고 있던 집을 통상 한옥이라 부르듯, 한옥은 주로 목조로 만든 건물이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의 목조라는 집들과는 차이가 없으나 꾸미는 방식에서 크게 차이를 지녀왔다.
또한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마루와 온돌이 있다는 것이며, 거기에 적절한 일사량을 유지시켜주는 조상의 지혜가 서려있는 마당과의 한옥의 조화는 한옥의 멋스러움과 우리의 선조들의 지혜를 여러모로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마루와 온돌은 그 성질상 특히 상반된 기능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마루는 개방적인 남방문화의 소산이요 온돌은 폐쇄적인 북방문화의 소산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개의 기능이 함께 존재하는 한옥의 특징은 우리 기후에 가장 적합한 기능의 완결성을 의미한다. 마루와 온돌은 오랜 기간을 통해 선택과 적응의 과정을 거쳐 전해 내려 왔으나 온돌의 경우 제주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에서 거의 절대적인 요소로 자리 잡은데 비해 마루는 민가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고 그 유형도 지역이나 집의 규모에 따라 달리 나타나고 있다.
기능적으로 보면 마루는 마당 쪽으로 완전히 개방되어 마당과 유기적으로 엇물리는 공간이 되며, 내부공간의 엇물림은 건축적 공간성을 높여주는 우수한 방법이고 좁고 한정된 내부공간을 외부로 확장하거나 외부공간이 내부에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의 신축성 또는 탄력성을 부여하는 우수한 연결방식으로 볼 수 있다. 또 앞마당 쪽으로만 개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뒷문을 열면 후원과도 연결되어 상호 관통하는 공간이 되게 한다. 따라서 마루는 외부와 내부공간을 이어주는 반 외부공간인 동시에 평면적으로는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고 공간을 중계하는 매개공간이라 볼 수 있다.


 ▲ 대청마루
앞장에서도 간략히 설명한 안방과 건넛방, 혹은 사랑방과 누마루 사이에 위치하여 두 개의 공간을 서로 연결하면서 기능적으로는 중간 역할을 하는 곳이다. 또 마루는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또 다른 측면의 매개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집 전체를 관장하는 성주신의 성주단지를 모시는 곳이 이곳이고 제사를 지내고 상청을 차리는 관혼상제의 공간과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마루이기 때문이다. 즉 신이라는 존재와 인간이라는 상, 하의 두 존재가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이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 마루이다.
한편으로 상류주택의 경우 가장 권위 있는 공간은 누마루가 된다. 누마루는 형태상으로는 고상식이고, 기능적으로는 여름에 습기를 피하면서 조망, 휴식을 위한 공간이다. 대청마루가 대개 한 면이나 두 면이 개방되는데 비하여 누마루는 세면이 개방되어 있어 외부의 수려한 풍광을 집안으로 끌어 당겨주는 공간이 된다. 따라서 누마루가 있는 공간은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경관과 아울러 밖에서 보면 전체 집모양의 수평적, 수직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상승공간이 된다. 따라서 외부에서 보이는 지붕 선은 수직과수평적 지붕에 크기가 다른 합각부분이 전후좌우에 중첩 배치되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다.
한없이 단순하고 부드러운 조화미, 어디서나 맛 볼 수 있는 정교한 아름다움, 면으로 치장된 벽체와 어우러져 나타내는 여백의 미, 아침 햇살을 가득 받아 표현되는 담백한 선, 창살과 창호지의 새하얀 멋과 어우러진 잘 닦인 앞마루의 고요한 선미. 이 모든 것이 한국인의 정서와 심미안을 나타내는 마루가 보여주는 우리의 마음인 것이다.

가]. 용도별 분류
1]. 안채:
대 문으로부터 가장 안쪽에 위치하는 안공간인 ‘안채’는 보통 안방, 안대청, 건넌방, 부엌으로 구성되어있다. 안채의 안방은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실내 공간 중에서도 상징적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출산, 임종 등 집안의 중요한 일이 이뤄지던 여성들의 주된 생활공간입니다. 그러기에 안채는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인 북쪽에 위치하며 이는 여성의 사회생활을 꺼려하여 남편이나 친척 외에는 남자들을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여성의 외부와의 출입을 제한하던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공간배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랑채와 달리 학문탐구 등의 활동공간이라기 보다는 가족들의 의식주를 전담하는 공간으로 가구류도 의복과 침구류 보관을 위한 수납용가구 등이 통상 놓여있다.
2]. 사랑채:
외부로부터 온 손님들에 대한 숙식으로 대접하는 장소이거나 이웃이나 친지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집안의 어른이 자녀들에게 학문과 교양을 교육하는 장소로 ‘사랑채’라고 하였습니다.
주로 사대부 남자들이 모여서 학문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시를 짓거나 거문고 등, 악기를 연주하며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영위한 것도 사랑채에서 하였으며 부유한 집안의 경우는 사랑채가 독립된 건물로 있었지만 일반적인 농가에서는 주로 대문 가까이의 바깥쪽 방을 사랑방으로 정해 남자들만의 공간으로 사용했다. 사랑채는 보통 사랑대청과 사랑방으로 구성되며 부유한 집안은 누마루를 마련하며 한층 품위를 살렸고 사랑방은 사랑채의 주요 공간으로 주인과 귀한 손님이 기거하는 공간으로 활용 되었다.
상류주택의 사랑방은 기거와 침식 외에도 독서, 예술 활동, 접대 등의 많은 행위가 이루어졌던 중요한 공간으로 유학을 장려하여 문필문학을 존중하며 경전을 연구하는 풍조가 만연하던 조선시대에는 가히 사랑방문화라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유교적인 생활을 지향하는 선비의식의 영향으로 사랑방의 가구나 장식은 매우 간소하게 꾸며져 보통 몇 개의 방석과 작은 책상, 책장, 장농, 문방소품 등으로 구성되었다.
3]. 사당채:
대 문으로부터 가장 안쪽, 안채의 안대청 뒤쪽이나 사랑채의 뒤쪽 제일 높은 곳에 '사당'이라는 의례 공간을 마련, 조상숭배 의식의 정착과 함께 별도의 공간을 두기도 하였다. 보통 사당에는 4개의 신위를 모시는데 서쪽부터 고조의 신위, 증조의 신위, 할아버지의 신위를 모시며 마지막에 부모의 신위를 모셨습니다. 각 위 앞에는 탁자를 놓고 향탁은 최 존위 앞에 놓았으며 대개의 중상류 주택은 가묘 법에 따라 사당을 건축하지만 사당이 없는 집도 많아 통상 대청마루에 벽감을 설치하여 신위를 모시는 경우도 있었다.
4]. 행랑채:
‘행 랑채’라 하여 하인들이 기거하거나 곡식 등을 저장해두는 창고로서 쓰였던 공간이 따로 있었다. 이것은 상하 신분제도의 영향으로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공간을 다르게 배치하였던 것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경우에는 하(下) 공간인 행랑채는 그 주택의 규모에 따라 '바깥행랑채'만 또는 '중문간 행랑채'도 존재 하였으며 바깥행랑채는 대문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집안에서 가장 신분이 낮은 머슴들이 기거하는 공간이었으며 중문간 행랑채는 양반들이 기거하는 안채, 사랑채와의 중간(中間)공간으로 집안의 중간 계층인 청지기가 거처하였다. 이들 공간들은 커다란 한 울타리 안에 작은 담장을 세우거나 채를 분리하여 구획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상류주택은 신분과 남녀별, 장유별로 공간을 분리하여 대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당시의 가족생활을 고려한 공간 배치를 한 것입니다.
5]. 별당채:
통 상 ‘초당’이라 불리기도 하는 별당은 규모가 있는 집안의 가옥에선 별당이 안채의 뒤쪽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이름이 다르게 불리어지도 하였으며 결혼 전의 딸들이 주로 기거하며 또한 결혼 전의 남자 아이들의 글공부를 위해 '서당'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집도 있었다.
6]. 곳간채:
중 상류층이상의 주택에서도 부유한 집안들은 수십 칸 규모의 주택을 짓고 살았으며 이들 '칸' 수가 많은 전통주택에는 ‘곳간채’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 오래도록 저장 해두어야 할 음식이나 여러 가지 생활용품들을 저장, 보관하는 공간입니다.
 

나]. 구조적 분류
 1]. 누마루:


▲ 누마루   

‘누마루’는 기단 없이 기둥위에 설치된 형태로 주로 사랑채에 설치되어 원두막처럼 마루바닥 밑으로 바람이 통하도록 사방이 트인 노출공간이다. 대청처럼 여름에는 문을 걸어 올려 주변의 자연과의 운치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겨울철에는 문을 닫아 한기를 막았습니다.

 
2]. 다락:


▲ 다락    
                                        
‘다락’은 안방의 아랫목 쪽 벽과 부엌과 면한 벽 쪽에 방바닥에서 45cm[1.5척]되는 곳에 설치된 수납공간이다. 이 다락에는 귀한 음식에서부터 가재도구 등 살림살이에 필요한 잡다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3]. 담:


▲ 담장  

전통가옥은 ‘담’과 함께하는 문화라 할 정도로 ‘담’은 치안을 위해서 높이 쌓거나 위협적으로 쌓는 일이 없이 나지막하며 은은한 장식을 두어 시적(詩的)감흥을 고취시킨 운치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담장을 장식한 무늬는 풍요와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많았으며 일반 농가의 경우, 지나가는 사람도 담 너머 들여다 볼 수 있을 만큼 나지막하게 쌓아 단지 집 밖과 집 안을 구분한다는 의미에서 둘러놓은 경우가 많았으며 민가에는 특별히 담장이나 대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경우도 많아서 싸리나무를 집 둘레에 심어 경계를 나타내거나 아예 대문이 없거나 사립문이 있더라도 늘 열어 놓고 살았다.
문은 닫아놓아 공간을 단절한다는 의미보다는 늘 열어놓고 통과하는 데 더 많은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한국의 문들은 대부분 늘 열려 있습니다.


4]. 기둥:

‘기둥’에 대해선 단면 형태로 구분하여 보면 [원기둥]과 [각기둥]이 있고 위치에 따라 구분하면 건물의 외곽에는 [외진주], 내부에는 [내진주]가 있다.
가.단면형태(기둥 깎는 기법)에 따른 분류 


▲ 단면형태분류   
*원(圓)기둥

-원통기둥 : 기둥 위부터 아래까지 일정한 굵기.
[건축물] : 송광사 국사전, 내소사 대웅보전
-민흘림기둥 : 안정감과 착각교정을 하기 위해 기둥위보다 아래가 작은 기둥.
[건축물] : 개암사 대웅전, 쌍봉사 대웅전, 화엄사 각황전, 서울 남대문
-배흘림기둥 : 육중한 지붕을 안전하게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기둥 높이의 1/3정도 에서 가장 굵어졌다가 다시 차츰 가늘어 시각적 안정감을 주는 기둥.
[건축물] :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무위사 극락전, 봉정사 극락전과 대웅전, 해인사 대장경 판고,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각(角)기둥
-4각주(四角柱) : 일반주택이나 장식이 덜한 건축물에 사용.
[건축물] : 정림사지탑, 익산 미륵사지 탑, 경회루 향원정
-6각주(六角柱) : 건축물 평면이 6각인 정자 건축물에 사용.
[건축물] : 경복궁 향원정
-8각주(八角柱) : 장식이 많은 건축물에 사용.
[건축물] : 쌍용총 8각 석주, 석굴암 8각 석주


나.위치에 따른 분류

*외진주(外陳柱)(바깥기둥: 평주(평기둥)와 우주(귀기둥) ): 소규모의 구조물에 사용
*내진주(內陳柱)(안기둥: 고주, 단주, 실심주):고주는 대부부의 구조물에 사용되며 중층건축물에 사용되는 단주와 다층건축물과 목조 탑파 형식에 사용되는 실심주가 있음
*동자주(童子柱)(활주) : 추녀부분의 처짐을 방지


5]. 온돌:


온돌은 신석기시대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오래된 우리의 난방구조이다. 움집을 짓고 살면서 기능별 공간이 구분되지 않은 채 가운데를 둥글게 파고 그곳에 불을 피워 취사와 난방 그리고 조명으로 사용하였고 주위로 냇돌을 대어 불의 번짐을 막음과 동시에 잔열도 이용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 학계에서는 이를 온돌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우 리나라의 경우 조선중기까지도 온돌은 일반 민중들이 선호하는 시설이었을 뿐 그 당시 지배계층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중국이 입식생활을 한 관계로 우리나라 지배층도 입식생활을 선호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노약자나 병자를 위한 공간 즉 집의 일부분으로 온돌을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가 되어서야 온돌이 일반화된 것 같다. 따라서 원래는 우리도 중국과 같은 부분온돌이 나중에 전면온돌로 바뀌면서 우리의 생활습관 자체가 입식생활에서 좌식생활로 바뀌었으며 이러한 연유로 신을 벗고 생활하는 우리 주거의 공간 구성으로 형성되었으리란 추측이 가능하게 된다.
‘온돌’은 열의 전도, 복사, 대류를 이용한 한국 고유의 난방 방식입니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는 가옥의 구조에도 계절적 온도 변화를 고려하였습니다. 방을 따뜻하게 데우는 구들과 여름이면 사방으로 바람이 통하도록 되어있는 대청이 공존하는 가옥 구조형태인 것이다.
추운 날에는 아궁이에 불을 때, 방바닥 밑의 구들장을 데워 방안을 따뜻하게 하였으며 아궁이에 불을 때면 그 열기로 인해서 음식도 조리하게 되었으며 경사진 부넘기를 넘은 열과 연기는 아궁이로 내닫지 않고 개자리에 이르며 그 열과 연기는 개자리에서 머물다 굴뚝을 통해 빠져 나가므로 구들은 오랫동안 온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의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온돌의 효능을 익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궁이와 구들은 어느 지방이나 거의 비슷한 형태지만 굴뚝은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것은 북방지역은 열도 뺏기지 않아야 하고 서북풍이 역류해도 안 되기에 굴뚝을 어디에 두느냐에 많은 고민을 하였으며, 굴뚝을 그냥 외기에 노출시키지 않게 두껍게 감싸 외기를 차단하고 개자리를 파서 열기가 더 머물 수 있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역풍이 들어와도 차단하는 기능을 발휘를 하였다.
남방지역은 북방지역보다 훨씬 따뜻한 기후로 굴뚝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가 없었으니 고래 끝에 구멍 날을 내어 개굴을 노출시킬 정도로 북방지역과는 다른 형태의 굴뚝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6]. 창:


▲ 창  
‘창’이라 함은 문과 같은 형식이지만 머름대 위에 설치되거나 크기가 문보다 작은 것을 창이라 합니다. 창은 채광, 통풍을 위하여 홑창호지를 바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창살 문양 또한 취향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였다. 상류주택에서는 일반적인 사각형의 창외에 그리 많지는 않으나 원창, 반월창 등을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전통한옥의 창은 창호지를 사용하였고 또 문풍지가 있어 따로 환기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 고정된 봉창 같은 것이 발달하기도 하였으며 창에는 봉창, 화창, 광창, 교창, 눈곱재기창, 살창, 갑창 등이 있습니다.
7]. 창호지:
한 국의 전통가옥에서 문과 창문은 격자무늬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무늬의 나무 창살을 만든 후 그 위에 한지를 발라 채광과 통풍을 고려하였으며 투명한 유리가 아닌, 한지를 통해 비쳐 들어오는 햇살은 강렬하지도 않고 은은하며 방안 분위기를 한층 차분하고 아늑하게 만들었다.
한지는 채광뿐 아니라 통풍에도 재료적 특성으로 조금씩이나마 방안의 탁한 공기가 빠져나가고 밖의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며 공기의 순환을 시켜준다.

이렇게 공기를 순환시켜줌으로써 뜨거운 구들바닥으로 인해서 건조해지기 쉬운 방안의 온도와 습도를 항시 적당하게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8]. 문:


▲ 문 
 

조선시대 주택의 출입문은 위치나 용도에 따라 그 구성 및 모양을 달리할 정도로 다양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엌의 출입문이나 대청 뒷면의 문은 판장문과 같은 두꺼운 문을 설치하였고 


▲ 들어열개문   

대청에는 들어열개문을 설치하였는데, 보통 문은 이중문으로 바깥쪽의 것을 덧문이라고 하여 방한과 방충 등의 용도이며 방과 방 사이에는 샛장지를 설치하고, 때로는 갑장지문을 쓰기도 합니다.

이러한 장지문들에는 채광을 고려하여 창호지를 발랐는데, 문살은 완자살과 아자살이 대부분이고, 이처럼 문살을 세밀하게 나눈 세살문은 모두 쌍여닫이, 미닫이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반도의 북쪽으로 갈수록 문살의 밀도가 낮은 정자문살이 사용되었으며, 남쪽으로 갈수록 문살의 밀도가 높은 창살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일조량이 적은 북쪽에서는 보다 많은 빛을 방 안에 들이기 위해, 남쪽에서는 보다 적은 빛을 방 안에 들이기 위해 문에서 종이의 면적과 살의 비율을 달리한 것이다.

문의 종류에는 판장문, 골판문, 맹장지문, 도듬문, 불발기문, 장지문, 분합문, 두껍닫이문 등이 있습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hang-a-ry/618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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