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9일 금요일

한가위, 중추절,추석


추석(秋夕)은 8월 15일로 한가위 또는 가위, 가윗날 이라 한다.
또 한문으로는 '가배'(嘉俳)라고 한다.

  이 날은 설과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절의 하나로 쳤다.
추석이 되면 한더위도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로 접어든 때이다.
추석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 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하다.
  그래서 이 날에는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집집마다 햅 곡으로 만든 술과 햅 쌀떡(송편)에 햅쌀밥을 지어 조상에 제사 지내며 선조의 산소에 성묘한다.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끝낸 뒤 신곡주 햅쌀밥 송편등을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내는데 이날 저녁 어린이들은 만세재끼를 하고 젊은이들이 칭칭이놀이, 강강수월래등을 부르며 추석 달빛 아래 즐겁게 노는 풍습이 전해져오고 있다.
  특히, 전라도 여수 기타 호남 지방과 경상도 부녀자들이 강강수월래를 부르며 노는 것은 매우 색다르고 흥겨웁다.


['추석'의 자세한 유래]

  이 말은 《예기(禮記)》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중추절(仲秋節)이라 하는 것도 가을을 초추 ·중추 ·종추 3달로 나누어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었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한국 고유명절로 추석은 ‘가윗날’이라 부르는데 이는 신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三國史記)》 유리이사금 조에 의하면 왕이 신라를 6부로 나누었는데 왕녀 2인이 각 부의 여자들을 통솔하여 무리를 만들고 7월 16일부터 매일 일찍 모여서 길쌈, 적마(積麻)를 늦도록 하였다.

  이 때 부른 노래가 슬프고 아름다워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는데, 이 행사를 가배라 부른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가배의 어원은 ‘가운데’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본다.
즉 음력 8월 15일은 대표적인 우리의 만월 명절이므로 이것을 뜻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다음은 진 편에서 이긴 편에게 잔치를 베풀게 되므로 ‘갚는다’는 뜻에서 나왔을 것으로도 유추된다.
고려시대에 나온 노래인 《동동》에도 이 날을 가배라 적었음을 보아 이 명칭은 지속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가윗날이 신라 이래 국속으로 지속되었음은 중국에서 나온 《수서(隋書)》 동이전 신라 조에 임금이 이 날 음악을 베풀고 신하들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여 상으로 말과 천을 내렸다고 하였으며, 《구당서(舊唐書)》 동이전에도 신라국에서는 8월 15일을 중히 여겨 음악을 베풀고 잔치를 열었으며 신하들이 활쏘기 대회를 하였다고 쓰여 있다.
  또한 일본인 승려 원인(圓仁)도 당시 산둥[山東] 근방에 살던 신라인들이 절에서 베푼 가배 명절을 즐겼음을 그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기록하였다.
  신라가 6부였음은 1988년 4월 15일 경북 울진군 죽변면(竹邊面) 봉평리(鳳坪里)에서 출토된 신라비석에 쓰여 있어 확인되었다.
  이 비석은 524년(법흥왕 11)에 세워진 것으로 6부 중의 하나인 탁부 출신의 박사가 건립한 것으로 되어 있어 가배풍속과 관련된 6부의 존재가 분명해졌다.

  이규경(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추석행사를 가락국에서 나왔다고도 했는데, 이처럼 가윗날은 한국의 고유한 명절로 오래 전부터 인식되어 왔다.
  이는 정월 대보름날의 예축적 의례와 서로 의미가 통하여 수확 경축적 의례라 하겠다.
따라서 지역별로 다양하고 풍성하며 다채로운 민속들이 나타난다.
《동국세시기》에는 송편 ·시루떡 ·인절미 ·밤단자를 시절음식으로 꼽았는데, 송편은 대표적인 추석음식이다.

  전하는 말로는 송편을 예쁘게 잘 빚어야 시집을 잘 간다고 하여, 여성들은 예쁜 손자욱을 내며 반월형의 송편에 꿀 ·밤 ·깨 ·콩 등을 넣어 맛있게 쪄냈으며 이 때 솔잎을 깔아 맛으로만 먹은 것이 아니고 후각적 향기와 시각적인 멋도 즐겼다.
《농가월령가》에도 신도주(新稻酒) ·오려송편 ·박나물 ·토란국 등을 이 때의 시식이라 노래했으며, 송이국 ·고지국도 영동 지방에서는 별식으로 먹는다. 이 때는 무엇보다 오곡이 풍성하므로 다양한 음식이 시절에 맞게 나온다.

  설날 ·한식 ·중추 ·동지에는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추석 차례 또한 조상을 기리는 추원보본(追遠報本) 행사이다. 호남지방에는 ‘올벼심리’라 하여 그 해 난 올벼를 조상에게 천신(薦新)하는 제를 지내며 영남 지방에서도 ‘풋바심’이라 하여 채 익지 않은 곡식을 천신할 목적으로 벤다.
일부 가정에서는 새로 거둔 햅쌀을 성주단지에 새로 채워 넣으며 풍작을 감사하는 제를 지낸다.

  속담으로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고 《열양세시기》에 언급했듯이 천고마비의 좋은 절기에 새 곡식과 햇과일이 나와 만물이 풍성하며,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실감된다.
전국적으로는 다양한 놀이가 전승되는데 호남 남해안 일대에서 행하는 강강술래와 전국적인 소먹이 놀이 ·소싸움 ·닭싸움 ·거북놀이 등은 농작의 풍년을 축하하는 의미가 있으며, 의성 지방의 가마싸움도 이 때 한다.
  가윗날에는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이 서로 만나 하루를 즐기는데 특히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반나절을 함께 회포를 풀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것을 중로상봉(中路相逢), 즉 반보기라 한다.
  속담에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라고 할 정도로 추석을 전후하여 반보기가 아닌 ‘온보기’로 하루 동안 친정나들이를 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큰 기쁨이며 희망이다.
오늘날도 민족대 이동이라 할 만큼 몇 천 만 명이 고향을 찾아 일가친척(一家親戚) 만나고 조상의 음덕을 기린다.
  중국에서도 추석날에는 달 모양의 월병(月餠)을 만들어 조상에게 바치고 달을 감상하며 시를 짓는다.
  중국 속담에 ‘매봉중추(每逢中秋) 배사월병(倍思月餠)’이라 하여 매번 중추날에는 더욱 월병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반달 모양 송편과 달리 보름달 모양의 월병은 이미 원(元)나라 때 만들어졌는데, 월병으로 시식을 삼고 또한 달을 감상하는 상월(賞月) 행사로 추석날을 보낸다.
이러한 풍습은 일본의 경우도 비슷한데, 동양 3국 가운데 우리 민족만이 이 날을 민족적인 대명절로 여기는 것은 한민족과 달의 명절이 유서깊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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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싸움]

  가마싸움은 일명 자메쌈 또는 가마놀이라고도 하며 학동들 놀이이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각 서당의 학동중 대표를 뽑아 총사로 삼고 각기 가마와 기를 만들며 가마싸움 준비를 한다.
  가마와 기 제작이 끝나면 15일 전까지 가마를 끌고 연습을 한다.
  15일이 되면 학동들은 가마를 끌고 마을을 누비고 다니며 기세를 올린다. 마을 주민 모두가 나와 응원을 하고 박수를 치며 격려를 한다.
  마을을 누비고 나서 시장 넓은 마당에 모이면 서로 한참 입시름을 하다가 총사의 지휘에 따라 접전을 하게된다.
총사의 지휘에 의해 전진하고 후진하고 좌우로 빙빙 돌다가 틈만 있으면 뚫고 들어가 가마와 가마를 부딪게 하거나 발로 가마를 차고 부순다.
  또 적군의 기를 많이 빼앗으려고 한다. 한참 정신없이 싸우다 보면 가마는 부서지고 기를 뺏고 빼앗기고 하여 승부가 나게 된다.
  승리한 측은 빼앗은 기를 높이 들고 기세도 당당하게 마을을 다시 누비고 다닌다.



[강 강 술 래]

 유래는 임진왜란 때, 당시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인 이순신(李舜臣)이 수병을 거느리고 왜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적의 군사에게 해안을 경비하는 우리 군세의 많음을 보이기 위하여, 또 왜군이 우리 해안에 상륙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 특히 전지(戰地) 부근의 부녀자들로 하여금 수십 명씩 떼를 지어, 해안지대 산에 올라,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돌면서 ‘강강술래’라는 노래를 부르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남해안 일대에 전승되어 오는 민속놀이로 주로 팔월 한가위에 여성들이 노는 놀이인데 여성놀이 중 가장 정서적이며 율동적인 놀이이다.
고대 부족사회의 공동축제 등과 같은 모임때 서로 손과 손을 맞잡고 뛰어 놀던 단순한 형태의 춤이 강강술래의 기원으로 추측된다.
  수십 명의 부녀자들이 손을 맞잡고 둥그런 원을 지어 무리를 이룬다.
이들 중에서 목청이 빼어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은 뒷소리를 받으면서 춤을 춘다.
  이렇게 노랫가락에 맞추어 여러 형태로 원을 변형시키며 고사리 꺾기, 덕석몰이, 청어엮기, 문열기, 기와밟기, 가마둥둥, 닭살이, 남생이 놀이 등 재미있는 춤 놀이를 벌이는 것이다.



[거북 놀이]

 거북놀이는 신라 문무왕 때부터 해왔는데 확실한 유래는 밝혀지지 않는다.
경기, 충청 지방의 농촌청년들이 마을 사람들의 무병과 장수를 기원하는 놀이.
수숫잎을 엮어 거북이모양을 만든 뒤 그 속에 두 사람을 앞뒤에 넣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한바탕 춤판을 만든다.
  거북과 패거리는 「바다에서 오느라 목이 마르다」며 음식을 청하고 먹다 남은 것을 가난한 집에 나눠주기도 한다.

 

[길쌈 놀이]

이 놀이의 유래에 대해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왕(유리왕)이 이미 6부를 정하고 이를 반으로 나눈 뒤 두 왕녀로 하여금 각각 부내의 여자 들을 거느리게 하였다.

7월16일날부터 새벽에 시작하여 밤 10시에 이르기까지 부의 큰 마당에 모여 길쌈을 하게 하였다.

한가위날 그 결과를 심사하며 진편에서는 이긴 편에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

이 때에 춤과 노래의 잔치가 벌어지는데 이르 가배(가위의 뜻)라고 하며 진편의 여자가 일어나 -회소 회소-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 소리가 슬프고도 맑아서 뒷날 사람 들이 이 소리에 따라 노래를 짓고 이를회소곡 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근래까지 전승되어 농촌 부녀자들이 7월에서 8월까지 일정한 장소에 모여 공동으로 길쌈을 하였으며 이를 모시두레, 돌개삼이라고도 불렀다.

길쌈이 끝난 뒤에는 노래와 춤과 음식으로 성대한 잔치를 벌여 그 동안의 피로를 씻었다.



[소먹이 놀이]


  멍석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가 소의 형상으로 꾸미며 집집마다 찾아다닌다.
거북놀이와 비슷하나 거북놀이가 개인이나 가정의 복락을 위한 것이라면 이 놀이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깊이 들어 있다.
  중부지방에 널리 퍼져 있으며 황해도 일부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소 싸움 놀이]

  두 소를 맞붙여서 싸우게 하는 놀이이다.
  주로 경상남도 지방에서 성행되었으나 강원도, 황해도, 경기도 등 일부 지역에서도 볼 수 있었다. 소 싸움에서는 무릎을 꿇거나 넘어지거나 밀리면 패하는 것으로 한다는 등 승패의 요건을 미리 정해두고 순서에 따라 싸우기 시작한다.
  소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큰 자랑거리로 여겼기 때문에 농민들은 송아지 때부터 잘 먹이고 관심을 기울여서 키웠다고 한다.




[칠교 놀이]


  칠교판(7개의 교묘한 판) 또는 유객판(留客板)(손님을 머무르게 하는 판)이라고 한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중국으로 부터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청나라 시대인 1803년에 처음으로 이 놀이에 관  한 책이 출간 되었으며 유럽쪽으로도 전래되어 이와 비슷한 놀이(Tangram 등)가 많이 생겨났다.
  나폴레옹, 특히 에드가 앨런 포우는 광적으로 이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모으면 정사각형이 되는 7개의 나무판을 배열해 여러가지 모양을 만들어 보는 게임.
  풍부한 상상력이 요구되는 이 놀이는 요즘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그림 맞추기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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